“나는 털없는 원숭이일 뿐만 아니라 덩치 큰 쥐이고, 걸어다니는 국화이고, 뭉쳐진 세균이다.”
치과의사인 나도 실은 이가 별로 좋지 않아 임플란트를 4개나 했다.
누가 이유를 물으면 어렸을 적 시골에서 태어나, 이를 제대로 닦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고 에두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올라온 이후 첫 구강검사를 받았던 장면이 흐릿하게 기억난다. 흰 가운을 입은 검사원이 아이의 입을 들여다보고는 기구를 검붉은 소독약이 담긴 컵에 넣어 한번 휘둘러 씻고 다시 다음 아이들을 보기를 계속했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입 벌리기가 싫어서 힘을 주었다. 누구에게도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이가 자주 아팠으니 상태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억지로 입을 벌리게 해서 대충 훑어본 검사원이 쯧쯧하며 혀를 찼다.
그후 나름대로는 칫솔질을 한다고 했지만 한번 망가진 이는 나아지지 않고 나를 괴롭혔다. 고등학교 때는 어금니 하나를 빼야 했고, 대학 때는 이미 개업을 했거나 공중보건의로 간 선배들에게 자주 신세를 졌다. 그렇게 치료에 치료를 거듭했으나 40대 들어서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는 지경이 되어 하는 수 없이 긴 시간에 걸쳐 임플란트를 했다.
임플란트라는 현대 과학의 열매 덕에 틀니를 피하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어찌되었든 요즘은 각별히 구강 관리에 신경을 쓴다. 어디를 가든 치실을 잊지 않고 챙기고, 물을 쏘아 이 사이를 씻어내는 구강 세척기를 병원과 집에 준비해 두고 사용한다. 또 괜찮은 칫솔과 치약을 골라 정성껏 이를 닦는다. 더 이상 이가 나빠지지 않고 잘 먹고 잘 싸는 중년으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렸을 적부터 내 이를 썩게 하고 치료를 해도 자꾸 문제가 되풀이된 이유는 입안에 세균이 많기 때문이다. 세균을 포함한 미생물이라 해도 좋다(미생물과 세균의 차이는 추후 이야기하겠다).
충치뿐만 아니라 입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이 미생물 때문에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날 때 느끼는 텁텁함은 간밤에 입속의 미생물들이 만든 가스 때문이다.
'무탄스'라는 세균은 충치를 만드는 주범이고, 잇몸 안이나 임플란트 주위에 자리를 잡은 '진지발리스'라는 세균은 잇몸병을 만든다. 따라서 칫솔질이나 치실, 물 세정과 같은 일상의 구강관리는 궁극적으로는 음식물 찌꺼기나 침 속의 영양소를 에너지 삼아 살아가는 미생물을 향한 행위다. 스케일링을 비롯한 여러 치과 시술 역시 마찬가지다. 구강관리만이 아니다.
매일하는 샤워나 손 씻기는 물론이고, 방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 쓰레기를 치우는 것, 먹고 난 음식을 냉장고에 넣는 것 등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많은 일이 미생물을 향한 행위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를 만들거나 유지하기 위해 하는 많은 일도 미생물을 향해 이루어진다. 상수도와 하수도를 따로 만들고, 공항에서 검역검사를 하는 것도 모두 미생물을 향한 행위이다.
겉보기에는 땀이나 때를 씻어내고 환경을 깨끗이 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수를 줄이는 행위인 것이다. 개인의 위생과 공중보건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100세를 바라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미생물은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감기나 비염, 폐렴 같은 호흡기 질환이나, 잇몸병, 장염, 대장암같은 소화기 질환의 가장 큰 요인은 미생물이다.
바이러스는 시시때때로 감기를 일으키고 피곤할 때 입술을 부르트게 하며 간염이나 자궁경부암을 가져온다.
세균은 폐렴과 설사를 일으키며 충치와 잇몸병을 만든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미생물은 천연두나 흑사병 같은 전염병을 불러와 인류를 위험에 빠지게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염병들을 예방하기 위해 현대의 대부분 나라에서는 백신을 미리 맞으라고 권장한다.
하지만 미생물이 늘 문제만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식품 오염원으로 가장 먼저 지목받는 대장균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비타민을 만들어 우리 장 세포에 선사한다. 장 세균은 우리가 어제 먹은 음식을 잘 가공해 오늘 아침 쾌변을 보게 하는 도우미들이고, 장 세포들의 면역력을 키우고 교육시키는 선생님이며, 병을 일으키는 다른 세균들이 못살게 견제하는 지킴이들이기도 하다.
꼭 이렇게 구체적인 기능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들은 우리가 지구를 터전으로 살아가듯이 그냥 우리 몸을 우주로 삼아 살아가는 생명체일 뿐이다.
2003년 발표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계기로 급격히 발달한 유전자 분석기법을 미생물학에 이용하면서, 우리 몸에는 구강이나 장뿐만 아니라 무균의 공간으로 여겼던 폐, 혈관, 심지어 뇌에도 미생물들이 상주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미생물은 우리 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 몸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미생물 공부는 질병의 원인을 아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인간을 포함한 생명 전체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미생물에 대한 이해 없이 생명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미생물 공부를 하면서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또 치과의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이전까지 미생물에 대한 시각이 상당히 편향되었음을 깨달았다. 미생물 하면 질병부터 떠올렸고 감염이 생기면 미생물을 박멸하기 위해 항생제부터 찾았던 것은, 내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나는 미생물이 이 자연에 나와 함께 존재하는 생명들임을 간과하고 적대시하며 항생제를 남용한 의료인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미생물 공부는 그동안 간과한 것들을 일깨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질병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갖게 해주었고, 미생물은 박멸이 아닌 적절한 관리와 공존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를 통해 나는 진료방식이나 약 처방, 병원의 운영방식을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미생물 공부는 또 내 몸을 제대로 이해하는 공부이기도 하다. 내 몸 속 미생물을 모르고 나를 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몸 속에는 우리를 이루는 30조 개의 세포보다 더 많은 미생물이 살고, 우리 유전자보다 1,000배가 넘는 미생물 유전자가 있다.
내 몸속에 사는 미생물을 공부하는 것은 미생물까지 포함한 보다 포괄적인 ‘나’를 느끼게 하고, 보다 긴 생명의 흐름에서 내 몸과 건강을 생각하게 한다. 내 몸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미생물 때문일 수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생물과 평화로운 공존을 하지 못하는 내 몸에 혹은 나의 면역력에 문제가 생긴 까닭인 경우가 더 많다.
질병에 대해서도 마냥 미생물 탓만 해서 약을 찾을 것이 아니라, 평소에 미생물과 공존하는 내 몸의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미생물 공부는 태초의 생명에서 나를 잇는 진화의 긴 시간을 음미하게 해준다. 미생물과의 공존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우리 몸 더 깊은 곳에서도 이루어진다. 우리 몸을 이루는 근간인 우리 몸 세포, 세포에서도 가장 안쪽인 핵 안에 꽁꽁 밀봉되어 있는 유전자, DNA에까지 미생물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진화론에 의하면, 인간 유전자의 8%는 바이러스에서 옮겨온 것이고, 37%는 세균에서 온 것이다.
태초의 생명인 미생물이 진화와 진화를 거듭해 ‘나’라는 생명체까지 오는 동안, 셀 수 없는 유전자 전달과 돌연변이, 그리고 상호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태초 생명체의 유전자와 기나긴 진화의 흔적과 힘이 우리 몸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공존은 ‘나’라는 생명체를 이루고, 나와 내 몸속 미생물의 평화를 가능케 한다.
19세기 중반 다윈의 시대에는 “인간이 털 없는 원숭이냐”며 놀랐다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인간이 원숭이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동물과 식물은 물론 미생물과도 생명의 원리를 공유한다는 것을 전혀 놀라지 않고 받아들인다.
나는 털 없는 원숭이일 뿐만 아니라 덩치 큰 쥐이고, 걸어 다니는 국화이고, 뭉쳐진 세균이다.
앞으로 치과뉴스닷컴을 통해 21세기 들어 새롭게 파악되고 있는 인간 몸 미생물에 대한 전반적인 스케치를 진행한다.
그간 진행된 생명과학의 혁명적 변화를 목도한 소감과, 그 변화가 나를 포함한 생명 전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할 예정이다. 바라건대, 이 글들을 통해 우리 몸과 미생물의 관계를 바라보는 보다 긴 안목과 생명친화적인 시선에 보탬되기를 희망한다. 나에겐 그랬다.
미생물 공부는 수직적 시간(진화)과 수평적 공간(생태계)이 기가 막히게 교차하는 지점인 ‘지금 여기’에 있는 ‘나’라는 생명의 위대한 우연을 느끼게 해주었다.
들꽃, 엘레지
- 블레이크, 영국 시인
한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송이 들꽃에서
하늘을 보라
네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한순간 속에서
영원을 담아보아라.
“나는 털없는 원숭이일 뿐만 아니라 덩치 큰 쥐이고, 걸어다니는 국화이고, 뭉쳐진 세균이다.”
치과의사인 나도 실은 이가 별로 좋지 않아 임플란트를 4개나 했다.
누가 이유를 물으면 어렸을 적 시골에서 태어나, 이를 제대로 닦아야 한다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고 에두른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서울로 올라온 이후 첫 구강검사를 받았던 장면이 흐릿하게 기억난다. 흰 가운을 입은 검사원이 아이의 입을 들여다보고는 기구를 검붉은 소독약이 담긴 컵에 넣어 한번 휘둘러 씻고 다시 다음 아이들을 보기를 계속했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입 벌리기가 싫어서 힘을 주었다. 누구에게도 얘기하지는 않았지만, 이가 자주 아팠으니 상태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했던 것이다. 억지로 입을 벌리게 해서 대충 훑어본 검사원이 쯧쯧하며 혀를 찼다.
그후 나름대로는 칫솔질을 한다고 했지만 한번 망가진 이는 나아지지 않고 나를 괴롭혔다. 고등학교 때는 어금니 하나를 빼야 했고, 대학 때는 이미 개업을 했거나 공중보건의로 간 선배들에게 자주 신세를 졌다. 그렇게 치료에 치료를 거듭했으나 40대 들어서 더 이상 손을 댈 수 없는 지경이 되어 하는 수 없이 긴 시간에 걸쳐 임플란트를 했다.
임플란트라는 현대 과학의 열매 덕에 틀니를 피하게 되어 감사할 따름이다. 어찌되었든 요즘은 각별히 구강 관리에 신경을 쓴다. 어디를 가든 치실을 잊지 않고 챙기고, 물을 쏘아 이 사이를 씻어내는 구강 세척기를 병원과 집에 준비해 두고 사용한다. 또 괜찮은 칫솔과 치약을 골라 정성껏 이를 닦는다. 더 이상 이가 나빠지지 않고 잘 먹고 잘 싸는 중년으로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어렸을 적부터 내 이를 썩게 하고 치료를 해도 자꾸 문제가 되풀이된 이유는 입안에 세균이 많기 때문이다. 세균을 포함한 미생물이라 해도 좋다(미생물과 세균의 차이는 추후 이야기하겠다).
충치뿐만 아니라 입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이 미생물 때문에 일어난다.
아침에 일어날 때 느끼는 텁텁함은 간밤에 입속의 미생물들이 만든 가스 때문이다.
'무탄스'라는 세균은 충치를 만드는 주범이고, 잇몸 안이나 임플란트 주위에 자리를 잡은 '진지발리스'라는 세균은 잇몸병을 만든다. 따라서 칫솔질이나 치실, 물 세정과 같은 일상의 구강관리는 궁극적으로는 음식물 찌꺼기나 침 속의 영양소를 에너지 삼아 살아가는 미생물을 향한 행위다. 스케일링을 비롯한 여러 치과 시술 역시 마찬가지다. 구강관리만이 아니다.
매일하는 샤워나 손 씻기는 물론이고, 방을 깨끗이 청소하는 것, 쓰레기를 치우는 것, 먹고 난 음식을 냉장고에 넣는 것 등 우리가 일상에서 하는 많은 일이 미생물을 향한 행위이다.
우리가 사는 도시를 만들거나 유지하기 위해 하는 많은 일도 미생물을 향해 이루어진다. 상수도와 하수도를 따로 만들고, 공항에서 검역검사를 하는 것도 모두 미생물을 향한 행위이다.
겉보기에는 땀이나 때를 씻어내고 환경을 깨끗이 하는 것이지만, 결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수를 줄이는 행위인 것이다. 개인의 위생과 공중보건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평균수명이 100세를 바라보는 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미생물은 우리 몸을 아프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감기나 비염, 폐렴 같은 호흡기 질환이나, 잇몸병, 장염, 대장암같은 소화기 질환의 가장 큰 요인은 미생물이다.
바이러스는 시시때때로 감기를 일으키고 피곤할 때 입술을 부르트게 하며 간염이나 자궁경부암을 가져온다.
세균은 폐렴과 설사를 일으키며 충치와 잇몸병을 만든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미생물은 천연두나 흑사병 같은 전염병을 불러와 인류를 위험에 빠지게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염병들을 예방하기 위해 현대의 대부분 나라에서는 백신을 미리 맞으라고 권장한다.
하지만 미생물이 늘 문제만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식품 오염원으로 가장 먼저 지목받는 대장균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비타민을 만들어 우리 장 세포에 선사한다. 장 세균은 우리가 어제 먹은 음식을 잘 가공해 오늘 아침 쾌변을 보게 하는 도우미들이고, 장 세포들의 면역력을 키우고 교육시키는 선생님이며, 병을 일으키는 다른 세균들이 못살게 견제하는 지킴이들이기도 하다.
꼭 이렇게 구체적인 기능을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이들은 우리가 지구를 터전으로 살아가듯이 그냥 우리 몸을 우주로 삼아 살아가는 생명체일 뿐이다.
2003년 발표된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계기로 급격히 발달한 유전자 분석기법을 미생물학에 이용하면서, 우리 몸에는 구강이나 장뿐만 아니라 무균의 공간으로 여겼던 폐, 혈관, 심지어 뇌에도 미생물들이 상주할 수 있다는 연구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다.
미생물은 우리 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리 몸의 일부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미생물 공부는 질병의 원인을 아는 것이기도 하지만, 우리 인간을 포함한 생명 전체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영역을 차지하는 미생물에 대한 이해 없이 생명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미생물 공부를 하면서 한 사람의 지식인으로서 또 치과의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이전까지 미생물에 대한 시각이 상당히 편향되었음을 깨달았다. 미생물 하면 질병부터 떠올렸고 감염이 생기면 미생물을 박멸하기 위해 항생제부터 찾았던 것은, 내 편견을 그대로 드러내는 행동이었다.
나는 미생물이 이 자연에 나와 함께 존재하는 생명들임을 간과하고 적대시하며 항생제를 남용한 의료인중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미생물 공부는 그동안 간과한 것들을 일깨워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동일한 질병에 대해서도 다른 시각을 갖게 해주었고, 미생물은 박멸이 아닌 적절한 관리와 공존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이를 통해 나는 진료방식이나 약 처방, 병원의 운영방식을 지속적으로 수정하고 있다.
미생물 공부는 또 내 몸을 제대로 이해하는 공부이기도 하다. 내 몸 속 미생물을 모르고 나를 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몸 속에는 우리를 이루는 30조 개의 세포보다 더 많은 미생물이 살고, 우리 유전자보다 1,000배가 넘는 미생물 유전자가 있다.
내 몸속에 사는 미생물을 공부하는 것은 미생물까지 포함한 보다 포괄적인 ‘나’를 느끼게 하고, 보다 긴 생명의 흐름에서 내 몸과 건강을 생각하게 한다. 내 몸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미생물 때문일 수도 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미생물과 평화로운 공존을 하지 못하는 내 몸에 혹은 나의 면역력에 문제가 생긴 까닭인 경우가 더 많다.
질병에 대해서도 마냥 미생물 탓만 해서 약을 찾을 것이 아니라, 평소에 미생물과 공존하는 내 몸의 관리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미생물 공부는 태초의 생명에서 나를 잇는 진화의 긴 시간을 음미하게 해준다. 미생물과의 공존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우리 몸 더 깊은 곳에서도 이루어진다. 우리 몸을 이루는 근간인 우리 몸 세포, 세포에서도 가장 안쪽인 핵 안에 꽁꽁 밀봉되어 있는 유전자, DNA에까지 미생물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진화론에 의하면, 인간 유전자의 8%는 바이러스에서 옮겨온 것이고, 37%는 세균에서 온 것이다.
태초의 생명인 미생물이 진화와 진화를 거듭해 ‘나’라는 생명체까지 오는 동안, 셀 수 없는 유전자 전달과 돌연변이, 그리고 상호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태초 생명체의 유전자와 기나긴 진화의 흔적과 힘이 우리 몸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공존은 ‘나’라는 생명체를 이루고, 나와 내 몸속 미생물의 평화를 가능케 한다.
19세기 중반 다윈의 시대에는 “인간이 털 없는 원숭이냐”며 놀랐다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는 인간이 원숭이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동물과 식물은 물론 미생물과도 생명의 원리를 공유한다는 것을 전혀 놀라지 않고 받아들인다.
나는 털 없는 원숭이일 뿐만 아니라 덩치 큰 쥐이고, 걸어 다니는 국화이고, 뭉쳐진 세균이다.
앞으로 치과뉴스닷컴을 통해 21세기 들어 새롭게 파악되고 있는 인간 몸 미생물에 대한 전반적인 스케치를 진행한다.
그간 진행된 생명과학의 혁명적 변화를 목도한 소감과, 그 변화가 나를 포함한 생명 전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이야기할 예정이다. 바라건대, 이 글들을 통해 우리 몸과 미생물의 관계를 바라보는 보다 긴 안목과 생명친화적인 시선에 보탬되기를 희망한다. 나에겐 그랬다.
미생물 공부는 수직적 시간(진화)과 수평적 공간(생태계)이 기가 막히게 교차하는 지점인 ‘지금 여기’에 있는 ‘나’라는 생명의 위대한 우연을 느끼게 해주었다.
들꽃, 엘레지
- 블레이크, 영국 시인
한알의 모래에서
세상을 보고
한송이 들꽃에서
하늘을 보라
네 손바닥에
무한을 쥐고
한순간 속에서
영원을 담아보아라.